▲ 기암괴석 사이로 시원스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독적폭포. 둥그런 소가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본격 단풍철이 시작됐다. 올해 단풍 소식은 예년에 비해 일주일가량 늦은 편이다. 하지만 '치장'에 오랜 시간을 공들인 탓인지 그 자태는 여느 해에 비길 바 아니다.

20일 현재 설악, 오대산 등 중부지방의 명산은 아랫녘까지 온통 화려한 오색 단풍이 내려 앉아 한껏 고운 자태를 뽐내는 중이다.

하루 20km씩 남하한다는 단풍은 이제 지리산, 덕유산 등 남녘의 산자락 정상부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이들 지역은 이달 말, 다음달 초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호젓한 분위기속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금상첨화일터. 　설악의 감춰진 단풍 명소 '도적소'와 강원도 양구의 대표적 오지 '해안면(일명 펀치볼)'에 내려앉은 가을 단풍을 소개한다.

◆ 설악산 감춰진 단풍명소 '미시령 도적소'

국내 최고의 단풍명산을 꼽자면 단연 산세 수려하고 계곡미도 빼어난 설악산이 으뜸이다. 천불동, 주전골, 수렴동, 백담사계곡….

때문에 요즘 설악의 휴일은 가을의 느낌을 맛보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 계곡은 절경에도 불구하고 등산로가 길고 험해 노약자나 연인, 가족 나들이로 적당치 않다. 게다가 번잡하기까지 하니 여유 있는 단풍 구경이 쉽지 않다.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면서도 온 가족이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설악산의 단풍 명소로는 단연 미시령의 '도적소(盜賊沼)'를 꼽을 만하다.

수려한 경관의 도적소는 이름만큼은 푸대접을 받은 셈이다. 골짜기에 곱게 내려앉은 오색 단풍과 기암괴석, 그리고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자면 '선녀탕' 쯤이 더 어울릴 법한데도 명칭은 '도적'(盜賊)이다.

'억울한' 이름을 얻기까지는 다 사연이 있다. 요즘에야 미시령이 '뻥' 뚫렸지만 그 옛날 영동과 영서를 오가는 교통요지 미시령을 걸어 넘어야 했던 시절, 도적골은 피할 수 없는 길목이었다. 헌데 도적소는 워낙 깊은 골에 자리해 도적떼의 단골 출몰지역으로도 악명 높았다. 운명처럼 조우하는 도적들에게 재물을 빼앗긴 채 도적소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해야 했던 나그네도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얽힌 야사를 알고 찾게 되면 도적소는 더 으스스 하다. 마침 이름값이라도 하는 듯 도적소에 머무르던 몇 시간 동안 단 한사람과도 조우할 수 없었다. 단, 월동준비에 바쁜 도적골의 다람쥐 남매만이 신기한 듯 이방인을 쳐다보고 있을 뿐….

이쯤 하면 도적소가 접근하기 엄청 힘든 곳으로 여겨질 법하다. 그러나 의외로 찾기 쉬운 곳이다.

도적소는 미시령을 넘는 56번 지방도로변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인제군 북면 용대 삼거리에서 56번 도로를 따라 미시령 쪽으로 약 5㎞쯤 가다보면, '도적폭포 모텔' 입구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200여m를 더 들어가면 숲속에 모텔과 카페 주차장이 있다. 모텔 앞마당을 지나 미시령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숲길을 500여m 정도 따라가면 제법 장대한 스케일의 도적폭포가 나타난다. 일명 '도적소'로 불리 우는 곳이다.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도적 폭포에 이르는 동안 주요 포인트마다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어 오색단풍 곱게 내려앉은 아기자기한 계곡미에도 흠뻑 젖어 들 수 있다.

무시무시한 야사와는 달리, 실제로 찾아본 도적소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바위위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옹기처럼 둥그런 소(沼)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주변의 단풍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곱고 화사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져 내리는 폭포수는 파란 가을 하늘을 담아 수정처럼 맑게 빛나고, 단풍잎 내려앉은 청정 소에는 현란한 설악의 가을이 녹아내리고 있다.

도적소는 해발 600m 지점으로 이번 주말까지는 고운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는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낙엽 길의 운치가 이어진다. 요즘 같은 단풍 절정기에도 다람쥐나 산새 정도만 조우할 만큼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야말로 호젓한 단풍 구경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 강원도 양구 펀치볼 주변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 양구 해안면(펀치볼) 단풍

호젓한 단풍 감상지로는 강원도 양구 일원도 손색없다.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으로 인적이 드문 만큼 고운 자태의 오색단풍과 함께 가을이 익어가는 강원 산촌의 여유로움 까지 맛볼 수 있다. 특히 양구읍에서 출발해 돌산령~해안분지~을지전망대에 이르는 운치 있는 산간 도로에는 양구의 늦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가 펼쳐진다.

이즈음 북녘의 운봉과 선녀폭포계곡을 붉게 물들인 단풍은 휴전선을 넘어 가칠봉, 을지전망대 능선을 타고 펀치볼 까지 내려앉았다. 양구의 단풍은 현란하기보다는 노랑과 갈색의 수수한 색채가 압도적이다. 설악산보다 북쪽에 위치한데다 해발고도도 높아 갈참나무 등 활엽수가 많기 때문이다.

양구의 대표 명물은 해안분지. 해발 1000m 고지 아래로 널따란 평지가 펼쳐져 있다. 토속적 느낌 짙은 오지에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외래어 지명을 얻은 이색지대다. 남북 11.95㎞, 동서 6.6㎞의 길쭉한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해안분지는 주변의 비경 이상으로 '시래기' 등 강원 북단 최고의 청정 농산물 생산지로도 이름난 곳이다.

펀치볼 이라는 지명은 6ㆍ25 전쟁 통에 얻었다. 외국인 종군기자가 차별침식으로 생긴 분지에 운해가 떠 있는 풍경을 보고 칵테일의 일종인 펀치를 담는 그릇과 꼭닮았다며 '펀치볼'로 불렀던 것이 그 유래다.

해안분지의 대표적 비경인 '분지의 운해'는 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10도를 넘는 늦가을 이른 아침에야 가끔씩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0월 하순, 해발 1000m의 돌산령과 해발 400∼500m의 해안분지를 연결하는 453번 지방도로 굽이 길에서는 계절의 변이를 실감할 수 있다. 짙은 안갯길이 펼쳐진 고갯마루 산정부에는 이미 겨울 빛이 감돌고, 단풍 곱게 물든 대우산 자락 아래로는 초록의 숲과 김장배추밭이 펼쳐져 겨울과 가을, 여름이 함께하는 계절 벨트가 이어진다.

◆ 여행메모 ▶가는 길 ◇미시령 도적소=서울(6번국도)~양평(44번국도)~인제 한계리(46번국도)~용대 삼거리~56번 지방도로 미시령 방면 직진 5km~도적소 입구. 도적폭포 모텔-카페 앞에 주차 공간 있음.　◇양구 해안면(펀치볼)=서울~춘천~46번 국도~죽리 태안주유소앞~31번 국도~양구읍~31번국도 동면사무소 지나 죽개골~453번 지방도로~해안면(펀치볼) ▶먹을거리 ◇미시령 도적소=용대 삼거리에서 진부령 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용바위식당(033-462-4079), 백담사 입구 설화가든(033-462-9351)에서 황태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백담순두부돌이네집'(033-462-0001)은 순두부가 유명하다. 도적소 입구에서 차로 10여분 달리면 미시령 정상 휴게소.　◇양구 펀치볼=양구읍내 '풍년집'(033-481-6050)은 시래기 해장국이, 해안면의 남원식당(033-481-0804)은 더덕구이 백반이 유명하다. ▶잠잘곳 ◇미시령 도적소=도적소 입구 도적폭포모텔(033-462-3356)은 매점, 커피숍(커피 4000원) 등을 갖추고 있다. 1박 3만원, 팬션형 7만원(각 비수기 기준). 설악산 주변에는 콘도도 밀집해 있다. 설악한화리조트(033-635-7711), 대명콘도(033-636-6678), 파인리조트(033-635-5800)　◇양구=양구읍내에 위치한 양구KCP호텔(033-482-7700)은 양구 유일의 호텔. 스위트룸 트윈룸 등 모두 50여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평일(월∼금요일)에는 숙박료를 50% 할인해준다. ▶여행팁 ◇양구의 단풍은 이달 25일까지가 절정. 을지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양구 해안면에 위치한 양구북한관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DMZ관광(02-706-4851)은 1박2일 일정의 '민통선 두타연 트레킹' 상품을 내놨다. 29일 무교동 한국관광공사 앞에서 출발해 펀치볼과 을지전망대 등을 둘러보고 30일 민통선 내의 두타연생태지역(14㎞) 트레킹 행사를 갖는다. 교통비, 숙식비 포함 6만8000원.